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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새 두 마리
노새 두 마리 책표지

노새 두 마리는 1인칭 관찰자 시점으로 그려진 작가 최일남의 단편소설이다. 1970년대 서울의 어느 가난한 동네가 소설의 배경이다. 당시는 급격한 산업화와 도시화가 진행되던 시절이다. 하지만 주인공의 아버지는 이러한 변화를 적응하지 못하고 노새를 끌며 연탄 배달을 다녔다. 작품에서 아들은 힘들게 살아가는 자신의 아버지의 삶을 노새로 비유하고 있다.

노새 두 마리 작가 최일남 소개

노새 두 마리의 작가 최일남은 1932년 12월 전라북도 전주에서 출생했다. 그는 서울대학교 국문과에 1952년 입학했다. 그는 1953년 문예에 쑥 이야기가 추천되고 1956년 현대문학에서 소설 파양이 추천되어 문단에 등단하게 된다. 그는 창작활동과 언론활동을 병행하면서 최일남 만의 색을 가진 작품들이 등장했다. 그는 1960년대 기자로 활동했다. 그래서 창작 활동을 거의 하지 못했다. 본격적으로 작품을 쓰기 시작한 것은 1970년대이다. 급격하게 변하는 도시화와 산업화 속에서 일명 출세한 촌사람들이 겪는 이야기를 개성적인 문체로 표현했다. 도시에 비해 상대적으로 낙후되었던 고향의 모습과 고향의 희생을 딛고 출세한 시골 출신의 도시인들이 느끼는 부채의식 등을 소설을 통해 표현하려고 노력했다. 최일남 작가의 주요 작품은 노새 두 마리 외에도 흐르는 북과 장 씨의 수염 그리고 누님의 겨울 등이 있다.

급변하는 도시의 삶을 그린 노새 두 마리

소설 노새 두 마리는 1970년 서울의 어느 가난한 배경으로 등장인물은 나와 아버지가 등장한다. 가난한 판자촌 근처에 서양식의 주택들이 들어서고 자동차가 점점 많아진다. 아버지는 이런 시대를 맞이해도 자동차를 살 형편이 되지 않아 노새가 끄는 마차로 연탄 배달을 다닌다. 자동차 배달보다 노새가 하는 배달은 속도에서 차이가 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한동안 아버지의 장사는 잘 되지 않았다. 그런데 문화주택 단지가 들어서니 일거리가 많아졌다. 아버지는 힘들었지만 가족들을 먹여 살리기 위해 열심히 노새를 끌고 다니며 일을 다녔다. 아들인 나는 가끔 아버지를 따라 배달일을 도왔다. 그러던 어느 날 높고 좁은 골목길로 연탄배달을 가는데 나이가 많은 노새가 힘을 쓰지 못하고 멈추고 말았다. 게다가 더는 마차의 무게를 견디지 못해 쓰러지고 만다. 경사진 골목길에서 밀려나 마차와 노새는 엉망으로 뒤엉켰다. 그때 노새가 어디론가 도망쳤다. 아버지와 나는 노새를 찾기 위해 온 동네를 뒤지도 다닌다. 하지만 노새는 찾지 못했다. 속상한 아버지는 밥도 드시지 못하고 자리에 누워버린다. 도망친 노새를 걱정이 되었다. 나는 노새가 동네를 누비며 사고를 치고 다니는 꿈을 꾸었다. 꿈 때문인지 마음이 더 복잡해져서 아버지에게 노새를 찾으러 나가자고 제안한다. 아버지는 나와 함께 노새를 찾으러 나선다. 그러나 동네 사람들은 아무도 관심이 없었다. 그래서 아버지와 나는 사라진 노새의 행방을 묻지도 못하고 돌아다닌다. 그렇게 두 사람은 어느 동물원에서 발길을 멈췄다. 아버지는 얼룩말 우리에 서서 한참을 서있었다. 나는 그런 아버지의 모습이 힘들고 외롭게 일해온 노새와 닮았다고 생각한다. 동물원에서 나와 두 사람은 어느 술집에 들어간다. 아버지는 술을 마시며 자신이 노새가 되어 열심히 일을 하겠다고 다짐한다. 그런데 집에 돌아온 아버지와 나에게 도망친 노새가 사람들을 다치게 하고 물건을 망가뜨렸으니 경찰서로 오라는 소식을 듣는다. 아버지는 경찰서를 향해 집을 나서고 나는 그런 아버지의 뒷 보습이 또 한 마리의 노새가 집을 나가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동차와 비행기가 다니는 세상에서 느린 노새로 살아가는 일은 얼마나 고달플 것인지 생각하며 나도 아버지를 따라 집을 나선다.

소외된 사람들에 대한 생각

노새 두 마리를 읽고 나니 무언가 씁쓸한 마음이 들었다. 소설의 배경인 1970년대는 도시화와 산업화로 인해 소외되고 적응하지 못하는 서민들이 등장한다. 주인공인 나와 아버지는 소외된 서민 들 중 하나의 에피소드로 묘사되고 있다. 그런데 현재 우리 주변에도 변화하는 시대를 따라가지 못하고 소외되는 이웃들이 존재한다. 스마트폰을 사용하지 못하는 할머니와 할아버지 혹은 우리 부모님이기도 하다. 평생을 가족과 자식들에게 희생하며 살았지만 그들은 새로운 문명의 혜택을 많이 누리지 못하고 있다. 시대적으로 빠른 변화도 좋지만 가끔은 소외된 이웃들을 외면하지 않고 따뜻함으로 다가갈 수 있는 친절한 사람이 되어야겠단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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